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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맛콘연재5]소비자는 모른다. 요리사의 슬픈 얼굴(글. 요리사 박찬일) [맛콘서트]
  • 조회 수: 5714, 2013-03-07 10:14:19(2013-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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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세계는 진보한다? 정말?

    사람들이 이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래도 세계는 진보한다”는 믿음이 있어서다. 불행하게도 요리에 있어서는 그런 믿음이 허망할 때가 많다. 시대의 유행 아이콘이 요리일 정도로 너나없이 관심이 많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쏟아지는 것이 요리책이고, 블로그라면 요리를 주제로 한 포스팅은 기본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도 요리는 가장 쉽게 가면서도 시청률에 도움이 되는 ‘안전빵’으로 인식되고, 요리사가 광고 모델이 되는 세상이기도 하다. 이건, 한국의 유행이라기보다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불러도 둘째 애가 나올 예정이라 가지 못하겠다고 했다는 이탈리아 요리사 이야기가 뉴스도 되지 못하는 시절이다. 한때 셀러브리티들의 서클에서 그랬듯이, 이젠 게이가 아니라 요리사 친구 하나 없으면 명함을 못 내미는 게 그 너머의 유행이라고도 한다. 뭔가 요리가 ‘발달’한 듯한 세상이다. 그런데 여전히 서울 시내 식당과 술집에서는 요리사 대신 전자레인지가 요리를 한다.

    납품 받다/전자레인지에 돌리다

    요리사라면 으레 시장을 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던 때가 있었다. 제철 재료라는 게 굳이 무슨 뜻인지 의미가 없던 때가 있었다. 시장에 가서, 가장 싱싱하고 값이 싼 것은 제철 재료였고, 요리사들은 그걸 골라서 요리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맛은 계절이 내고, 요리사는 간을 보면 되던 시절이었다. 이제 요리사들은 인터넷에 들어가 다른 식당이 뭘 하는지 들여다본다. 유행하는 음식이 뭔지 그림을 본다. 제철 재료 같은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유행하는 요리에 어울리는 전세계의 재료가 냉동으로, 완벽히 손질되어,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해도 팔 수 있을 만큼 공급되기 때문이다.

    고급 재료인 바닷가재 같은 건, 실물을 본 적이 없어도 얼마든지 팔 수 있다. 먹을 수 있는 부위인 꼬리만 골라서 열 개씩 차곡차곡 포장된 냉동 제품이 주문과 동시에 부엌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이미 익혔으니(냉동 재료의 다수는 가열처리가 된 것이 많다. 해동만 하면 쓸 수 있으며, 가열을 통해 냉동에 따른 품질의 저하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데워서 소스를 바르면 팔아먹을 수 있다. 이런 놀라운 세상이라니!

    농담처럼 후배들과 요리사 없는 식당을 해볼 수 있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전자레인지를 한 열 대쯤 들여다 놓으면 가능하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심지어 “불판”이라고 부르는, 가스레인지도 없이 얼마든지 요리를 할 수 있겠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거 이미 다 하고 있는 거예요

    실제로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못하는 요리가 없겠다 싶었다. 이를테면, 장어요리를 한다고 치자. 손질 후에 익혀서 양념이 다 되어 있는 장어가 냉동으로 열 마리씩 포장되어 팔린다. 그걸 북 뜯어서 랩을 씌워 제1번 전자레인지 한 번에 넣고 돌리는 와중에 완제품 소스를 뜯어서 역시 제2번 레인지에서 데운다.

    샐러드? 채 썰어서 공급되는 모둠 샐러드를 접시에 담고 냉장고에 있는 완제품 소스를 부으면 된다. 단, 제1번부터 제10번까지 서로 다른 소스의 번호를 헷갈리지만 않으면 된다. 샐러드 소스는 키위와 마요네즈로 만든 “건강” 과일 소스라는 걸 잊지 말자. 놀랍게도 이런 우리의 “공상”을 듣던 다른 후배가 심드렁한 말투로 더 이상의 상상을 막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선배들, 그거 이미 시중에서는 다 하고 있는 거예요. 상상하면 누군가 하고 있다는 거, 모르세요.”

    실제로 요리 재료 공급상에 가보니, 그런 ‘상상’의 재료가 엄청나게 팔리고 있었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세상, 결코 폼 나는 미래지향적 카피가 아니었다. 요리가 있는 곳에 희망이, 아니라 공장이 있었다. 한 후배는 고시촌에서 대형 밥집의 부엌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다. 그는 거기서 맛본 국의 맛을 잊지 못한다.

    요리 이름은 오징어국.

    어디선가 맛없는 오징어다리만 따로 포장되어 공급되었고, 그걸 해동한 후 잘게 썰었다. 그러고는 요리사는 다른 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요리를 끝냈다. 그저 커다란 국솥에 물을 100리터쯤 붓고 오징어다리를 넣은 게 다였다. 참, 한 대접의 중국산 복합조미료(그저 한 제품의 이름을 따서 “다시다”라고 통칭하는 유사 제품인)을 퍼서 넣었다고 내가 얘기했던가.

    차마 눈 뜨고 못 볼 광경

    식당이나 술집에서 나는 못 볼 걸 많이 본다. 화장실 가는 길목에 부엌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화장실과 부엌은 그렇게 식당의 오지로 밀려난다) 차마 눈 뜨고 못 볼 광경이 있다. 일반인이야 모르고 스쳐갈 수 있는 것, 그러나 나 같은 요리사 눈에는 심상치 않을 장면들이다. 온갖 가공 소스로 빽빽한 찬장, 더러운 집기들, 무엇보다 피곤에 절어 인스턴트 봉지를 뜯으며 어떠한 삶의 희망이나 요리에 대한 열망이 없어 보이는 피곤한 얼굴의 요리사들을 보게 된다. 그들도, 한때는 멋진 요리사 복장에 높다란 모자를 쓰고 최고의 요리를 하겠다는 의지가 충만하던 요리학교 졸업생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참담했다.

    나는 유럽에서 요리를 배웠다. 그래, 잘난 “유럽 요리”다. 내가 그렇게 느낀 것의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그쪽 나라에서는 요리란 대체로 상향평준화되어 있었다. 재료도 일정한 수준을 지키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요리의 값도 그랬다. 요리 한 그릇을 사먹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약간의 흥분과 기대를 안고 있는 즐거운 체험이었다. 그런데 한국은 달랐다. 대체로 하향평준화되어 있었다. 요리 재료는 어떻게 하면 가장 싼 것을 공급할 수 있을까, 인간의 상상력을 모두 동원한 듯한 제품이 많았고(예를 들어 무짠지 한 쪽이라면 소금과 무가 전부여야 한다. 그러나 두 줄이 넘는 첨가물은 도대체 무엇인가), 현대 과학의 총아들이 집약(?)된 제품들이 다수였다. 식당의 위생수준도 하향평준화였고, 요리사들의 대우나 손님들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이봐, 스테이크 제일 비싼 걸로 가져와 봐).

    콩국수는 재활용을 안 하더군요

    오랫동안 같이 일하는 조선족 출신의 아주머니가 있다. 그저 스쳐 가는 이주노동자였을 그분이 나와 오래 일하게 된 건 놀라운 위생관념 덕이 컸다. 보통 깨끗하고 깔끔한 분이 아니었다. 첫 만남의 일화가 있다. 가로수길에서 새로 문을 연 카페테리아 식당에서였다. 인력사무소의 소개(소개료도 10만 원인가 받고, 그분의 일당에서 5천 원을 매일 잘라간다)로 만났다.

    당시 주방 시설이 부족해서, 열 명이 넘는 직원들이 밥을 해 먹지 못하고 배달 시켜서 해결했다. 온갖 배달 음식점을 돌아가며 시켰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는 초지일관, 콩국수만 주문했다. 우리가 별명을 콩국수 아주머니라고 붙일 정도였으니까. 하루는 무심결에 “콩국수를 아주 좋아하시나봐요.”라고 물었다. 대답은 뜻밖이었다.

    “콩국수는 재활용을 안 하더군요.”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었겠다. 사실, 재활용 문제는 여기서 다 쓸 수 없는 일종의 “시스템”의 문제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 식당업의 현실이며, 한 끼 밥값이 5천 원-부자들도 벤츠를 몰고 5천 원짜리 음식을 먹으러 다닌다-에서 요지부동인 시스템에서는 불가피한 문제다. 생각해 보라, 반찬 다섯 가지에 찌개 한 그릇을 포함하여 5, 6천 원인 밥값을 정상이라고 보는 당신이 비정상 아닌가.

    당신이 담근 김치의 “정상적”인 제조 원가를 생각해보라. 절인 배추가 10킬로그램에 20,000원인데, 완제품 김치가 18,000원인 까닭을 단 한 번이라도 고민해보았는가. 일본의 한식당에서는 깍두기 한 접시에 500엔(약 7000원)이라고 놀라워하면서도, 당신이 먹는 밥상에 세 가지 김치가 무한리필 되는 것에 대해 단 한 번이라고 의구심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최근에 대만계 한 중식당에 들렀다. 그 식당은 김치를 무료로 제공하지 않고 사먹어야 한다. 한 접시에 5천원이었다. 누가 뭐라하든, 나는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만든, 김치의 원가를 생각해보면 아마 당신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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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순, 모순, 또 모순

    한 나라의 여러 가지 지표들이 모이는 곳이 식당이다. 물가 수준, 청결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 친교의 느낌, 좋아하는 음식, 먹는 문화의 대강(大綱)까지. 거기에다 그 나라의 정치경제적 모순도 집약된다. 직원들 얼굴 표정에 그 나라의 노동정책이 드러난다고 하면 과장일까. 나는 오늘날 한국의 식당이, 고급 음식을 소개하는 언론의 호들갑과는 정반대의 저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슐랭 가이드가 왜 안 들어오느냐고 내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그들이 이 나라의 구석구석 식당들을 암행으로 돌아다닌다는 상상만도 끔찍하다.

    볼 거, 못 볼 거, 다 본다는 상상 말이다.

    무얼 보느냐고? 당신이 보는 그것들.

    글 : 박찬일(요리사)

    그림 : 소복이 http://sobog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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